1948년, 다자이 오사무가 마지막으로 완성한 소설입니다. 연재가 끝나가던 그해 6월 그는 강에 몸을 던졌고, 그래서 이 책은 유서처럼 읽히는 운명을 갖고 태어났습니다. 인간이 무서워서 평생 익살을 연기한 남자 요조의 수기 — 80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소설 중 하나입니다.
읽은 사람들의 반응은 정확히 둘로 갈립니다. "한심하다"와 "내 얘기다". 어느 쪽이든, 아래 문장들 중 하나쯤은 오래 남을 겁니다. 문장은 원문에서 매일열장이 직접 옮겼습니다.
“부끄러움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.”
수기의 첫 문장이자, 한국 독자에게 이 책 전체를 대신하게 된 문장. 자기소개가 아니라 자기 판결로 시작하는 소설은 흔치 않습니다.
“인간의 삶이라는 것을, 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.”
요조의 모든 비극이 이 한 줄에서 출발합니다. 그는 악한 게 아니라, 남들이 아무렇지 않게 사는 방식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.
“겁쟁이는 행복마저 두려워하는 법입니다. 솜방망이에도 상처를 입습니다.”
행복이 두려운 사람이 있다는 것 — 북토크에서 가장 오래 머문 문장 중 하나였습니다. 좋은 일이 생기면 불안해지는 마음을 아는 사람이라면.
“서로 속이면서, 이상하게도 아무도 상처 입지 않는,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한.”
요조가 관찰한 "세상 사람들"입니다. 그는 이 매끄러운 거짓말의 세계에 끝내 합류하지 못했습니다.
“세상이란 게 대체 무엇입니까. 인간의 복수형입니까.”
"세상이 용서하지 않는다"는 말 앞에서 요조가 떠올린 반문. 세상이라는 거대한 말의 정체가 결국 구체적인 사람들이라는 통찰은 지금도 유효합니다.
“그것은 세상이 아니라, 당신이겠지요.”
위 반문의 결론. 요조는 이 말을 끝내 입 밖에 내지 못하고 삼킵니다 — 이 소설에서 가장 서늘한 침묵입니다.
“지금 저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.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간다는 것.”
수기의 끝에서 요조가 도달한 자리. 매일열장 독자들이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남긴 문장이기도 합니다.
“하느님처럼 착한 아이였어요.”
요조를 기억하는 마담의 마지막 대사로 소설이 닫힙니다. 이 말이 맞는지 틀린지 따져보게 된다면, 당신은 이미 자기 안의 요조를 한 번 들여다본 사람입니다.